등이 아픈 것을 계기로 준비해서 22년 겨울 12월에 회사에 아파서 못 나온다고 결정적으로 말하고, 거의 은퇴애 들어 간 것이 1년이 넘었는데, 무엇을하고 지냈는지 전혀 기억도 없고, 계획도 없었다.
하나 한 것이 있다면 손주 보기. 첫 손주, 너무 똘밍 똘망 눈망울에, 항상 무엇을 할꼬 머리 귤리는 것이 보이는 이 꼬마 도령이랑 노는 것이 얼마나 재미나고 신기하고 감사한 일인지 말로 할 수가 없다.
이 이쁜 손주 아래로 손녀가 태어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덕에 손자, 손녀 하나씩을 둔 부자 할매가 되었다.( 친구 자녀들을 보면, 결혼하기도,  어기 낳기도,  손주 돌보아 주기도 다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베비시터는 와서 작은 손주를 보고, 나는 여차 하면 달려가서 큰 손주 돌보미를 한다. 감기 걸렸다, 너무 피곤하다, 부부 저녁 모임이 있다, 출장이 있다 등등의 분부만 있으면 한 걸음에 달려가서, 자고 가라하면 지고 밤에 돌아가라하면 가고 하면서 아기를 봐준다.
손주라고만 해도 이쁠 것인데 얼마나 이쁘게 생긴지는 말로 할 수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주관적? 모든 할매의 이구동성?)
아가의 크고 맑고 장난끼 가득한 눈망울을 보면, 내가 세상에 더 부러울 것이 뭐가 있나, 정말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나의 생각이다. ㅎㅎㅎ.
 
한걸음에 달려가, 아니면 우리 집에 데려와서 돌봐주고 밥해 먹이고, 놀아주다보니  일년이 어찌 지났는 지도 모르겠고. 은퇴를 결심한 용기를 내게 된 100% 이유인 이 손주들을 필요할 때 봐 쥬게 되어 얼마나 더 행복한 일인지...
 
이제는 세살이 되어서 손가락으로 세살도 보여주고, 숫자도 세고, 뜻도 모르는 요일도  읊어대는 조 이쁜 조동이.  그리고 할미를 놀리는 말도 하며,  있는데 없다고도 할 줄 아는 지능이 되었다.
 
아들 하나가 이리 성장하여 이제 마흔이 3년 뒤인 사회인이 되고, 아내가 생기고, 가족이 늘어나서 1명이 4명이 되었으니 할 도리 다한 셈.
 
나의 지난 세월, 수많았던 역경들, 차마 지나지 못하고 그만 두고 싶었던 고개 고개 구비 구비의 보상을 다 받는 듯 하다.
경제적으로는 주위 친구들의 부에는 발톱도 못 내미나,
저에게 은혜가 족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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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35년,

나는 불행하네 하면서,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떠 오르며 과연 그들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그들은, 그때보다 니은 생활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정말, 과연 나는 어떠하여 이리 down 되어

죽지 못해 사는 마음인가 살펴본다.. 

학장 시절에는 교우 관계가 넓지 못했다. 많은 자매들속에 뽂다거리며 사느라, 우리끼리 놀고 다투고 바빠서 친구라고는 국교 1명, 고교 1명이 전부이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이 집에 오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면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친구들이 주로 집으로 왔다. 대학교때는 같은 지방서 올라온 친구들과 열명이 등하교를 같이 하며 어불려 다녔지만 졸업과 이민과 동시에 연락 없이 지내고 있고, 한국 나가는 일이 있어도 전혀 연락 할 생각을 않고, 형제 집에서 꽁 박혀완전 조폭같이, 같이 나갔다 같이 들어왔다, 여행 다니며 지내다 오니까 나는 사회적인 성형은 아니다. 아니면 사람 대하는 일을 오래하다 보니 나의 성격이 달라진거다. 

결혼하고 사회 셀횔속에 만난 사람들, 

그때는 밥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 오는 것을 좋아해서, 집에 사람이 늘 끓었다, 오죽하면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는 늘 열명이 밥먹는다고 불평하셨었다. 그리고 나도 다른 집에도 가고, 더구나 작은 교회라서 거의 격주로 교회 사람들이 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혼자 다니지를 못해서 늘 사람을 끼고 다녔다. 뭐 사줄께 같이 가자 해서 손님 만나러 갈 때도 누구라도 달고 다녔다.

그러던 내가 바뀌어서 이제는 혼자 다니는 것이 좋고 편하고, 사람들이 싫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한다. 

나의 바램은 시골에 가서 농사 짓고 혼자 수행하며 사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혹시 사람 좋아하는 나의 천성이 다시 나올라나...

 

그때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많이 알고 지냈다.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을 알지만 손님들뿐.

그때 알던 사람들이 어찌 지내고 있을까,

많이들 행복해졌을까...

몇사람 소식을 아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편치를 못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불행한 것은 아닐테고.

나만 불행하나?

그러면 나는 무엇이 그리 불행하서 이리 석달을 내리 노는 날에 즐기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며 사나.

무엇이 문제인가?

일하기 싫다는 것과

남편이 맘에 안든다는 것.

일. 손님을 대하는 일이고 책임감이 많은 일이다보니 넌더리가 나기도 하고,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이 어디인데 이제 완전 프로페셔날로 가는 입문이고 조그만 노력으로 돈 버는데 싶지만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일이 잘되니 팔자가 편해서?... 형부는 작년에 은퇴하셨는데 29년 일하고 은퇴, 나는 벌써 35년 일했으니 은퇴해도 되지 않을까?...

남편. 영원한 숙제. '남편=남의 편'이라고. ㅎㅎㅎ. 이리 오래 살아도 적응이 안되고, 내리 놓아야지하면서도 포기도 안되고,  속을 있는 대로 다 디집어서 내가 화병으로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아 안보고 사는 것을 바란다. 

그래서 내가 불행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리 험악한 상황인가?

아니제!

다시 열심히 하자. 그리고 노력하자. 

2년만 더 채우고 은퇴하고

남편 내리놓기 더 연마하고.

나에게 주어진 많은 장점과 잘 된 일들을 보며 감사하고

매일 매일 잘 된 것, 주어진 것을 보며 살자.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에 매여 불행하다고 주문 외우며 살지 말자.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감사로 노래하고 살아보자.

오늘 하루만, 딱 오늘 하루만 그렇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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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에 사무실서 긴급회의를 통해 사무실 클로즈한다고 해서

2, 3일이면 되겠지하고 랩탑만 달랑 들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2주,3월 말,  4월 말, 5월 중순으로 늘어난 상태이다.

그 사이에 사무실에 가서 자택 근무에 필요한 도구들을 추가로 더 가지고 와야 했다.

사무실에 갈 때도 슬픈 상황이었다.

160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이다.

매일 한 사람이 우편물 첵압, 배달되는 손님들 첵크때문에 근무를 한다.

우리는 전화나 이메일로 당일 근무자에게 내 사무실에서 무엇, 무엇이 필요하다고 미리 말하고, 만날 시간을 정한다.

그리고 우리 사무실 고객 전용 파킹장에 있으면 당일 근무자가 마스크, 손 장갑을 끼고 나의 물건을 들고 나온다.

나는 차의 뒤 트렁크를 열어 놓고 6피트 떨어져 있고, 당일 근무자가 다 실으면 내 차에 다시 타고, 땡큐 & 바이를 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다. 이제는 악수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실어준 물건을 뒤 트렁크에 싣고 나오는 마음이 너무 서글펐고, 당최 이 이상한 상황은 언제 끝나나,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한심스럽다.

더구나 미국이란 세계 최 강대국이라는 곳에서, 다른 나라에서 두, 세 달 번지고 있을 동안 무엇을 준비한 것인가?

양로원에서는 노인들이 속절없이 숨을 거두고 있고,

산소마스크, 병원 근무자 마스크도 부족하다 하고,

원인 규명도 못한 채 장례를 치러야 하고,

장례도 너무 많아서 제때 못 치르고 열흘 넘게 기다려야 하며,

직계 가족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병원 근무자들도 많은 감염과 사망이 잇따르고 있고,

각종 식품 생산지, 육 축 생산지, 도처에서 감염자가 잇따라서

생산이 어찌 될지, 유통이 어찌 될지, 다시 경제 활동이 풀려도 문제가 많을 것이고,

백신이 나와서 자유롭다 하더라도 그동안의 피해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얼마나 심각하게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정말 뚜껑을 열어보아야, 지나가 보아야 알...

많은 일반인들은 주식을 한다고 난리가 났고,

경제, 투자 전문가들은 공황을 언급하며 현금을 만들고 있다. 더 낮아질 것이니 그때 쓸 거란 말이지.

 

교회의 의사 선생님 장로님께서 같이 일하는 병원 근무자들이 사망을 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원인도 모르는 채 환자분들이 많이 사망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시다고..

이런 상황 속에서 일하시는 모든 근로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특히 의료진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뭐라 감사의 말씀을 전할 수가 없다.

 

여하간 며칠로 알았던 자택 근무가 벌써 40일째. 그리고 또 25일이 더 있어야 출근을 할 수 있는지 알겠지만,

경제 활동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사무실에 출근을 할지, 손님들을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부터도 안 나갈 것이니까.

아침 8시에 사무실에 나가서 밤 10,11, 혹 그 다음날 1시까지, 토요일도 나가서  일하던 나.

처음에는 휴가로 알고 즐기자, 비싼 모게지와 세금 내며 사는데, 잠만 잠시 자고 나가던 집에서

동네도 걸으며 벚꽃, 배꽃, 목련 등 갖갖 봄 냄새를 황홀하게 느끼며,

하루 세 번 걷고,

따신 밥 해 먹고,

냄새나는 김치 찌개 등 각종 먹거리로 일일 일 요리로 맛나게 먹고,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즐기자 하며

그러잖아도 하기 싫은 일을 뜸하게 하고 있는데

어쩌다가는 확 돌아버리겠다 생각도 들고...

정신 상태에 문제가 많은 사라들도 생기겠다는 염려.

이 참에 은퇴하고 작은 돈으로 애끼 살며 그냥 그렇게 살아보까도 싶고.

미국 와서 일한 지 벌써 35년.

이번에 한국 갔을 때, LG 다니시다가 은퇴하신 형부가 25년 일하셨다는 말에 화가 났다.

오잉?! 나는 여자인데 35년이나 일했는데, 은퇴하려면 할 수도 있는 상태이네?

미국 상황은 좋지 않다.

이 파동이 끝났을 때 다가올 많은 비즈니스의 파산과 이렇게 대책 없이 헬리콥터 돈을 뿌린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돌아올 것인지 정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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