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낯설고 물설고 다 설고
남편은 더 낯설어지고
평생 살아보지 못한 시댁이라는 이상한 곳에서 살며
생전 처음 일을 시작하고
아기를 낳고
키운다고 아둥바둥 줄달음 치고 길고 긴 시간을 달려와
이제, 
아이는 결혼 3년차가 되었고
올해 10월이면 32세가 된다.

이제는 중년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

소위 아이비라는 최고 학부를 나오고
성실히 일하며
아내와 둘이 온 세상을 여행하며, 인생을 즐기고 사는 모습을 보며
감사한 마음뿐이다.

형편 안되어 못해준 것 있을 지 몰라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 물질, 마음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200% 를 하고 
헐레벌떡 키운 아이.
키우고 난 후 후회는 없다.
그래서 나에게서 잘 떠나 보낼 수 있었는 지 모르겠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지만
나 행복하고, 너 행복하면 되었지하며
절대 간섭, 잔소리 안하기하며
아이가 떠난 후, 내 시간을 100%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현실을 즐기며,
나는 내 일에 더 전념하며 살고 있다.
아니면 키우기에 너무 안달복달 힘들어서 잘 떠나 보낼 수 잇었는 지도 모르겠다.

대학으로 집을 떠나면 우는 엄마들이 많던데
나는 너무 자유스러웠다.
모든 것이 아이의 위주로 다 돌아가야하는 상황, 의무에서 벗어나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
아이도 나도 고생한 덕에 아이가 원하는 어려운 대학에 합격이 되어 그랬는 지도 모르겠다.

장년의 모습을 보이는 아이가
생일이나, mother's day 카드에
엄마가 나의 role model 이다, 엄마가 있어서 본인이 여기까지 왔다등등으로 
쓴 것을 읽으며 흐뭇하고
내가 자랑스럽게도 느껴진다.
고등학교때도 Intel 과학 경시대회에 나갈 때의 원서에도 영향 미친 사람이 누구냐하는데
엄마라고 적어서
"짜아식"하며 몸둘 바를 모르고,
콧등이 찡했고.
동생은 옆에서 핀잔한다, 주위에 사람들이 넘 없나보네.
ㅎㅎ, 그것도 맞는 말.
그래도 자랑스럽다, 내가. 울 잘난 아들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대학 보내며,
어떻게 아둥바둥 키웠나를 잊어버리기 전에 쓰고 싶었는데 
벌써 대학 졸업한 것도 10년이 되어가네.
미루기의 힘.

김민식 피디님의 세바시를 듣고
생전 처음 열은 블로그, 그리고 글쓰기.
우리 아이와 나의 이야기, 
일하며 어렵게 키우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되리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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