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 자매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은 딸 여섯을 가지고 키우셨다.

밥상에 앉으면 아빠 혼자 남자, 다 여자 주욱.


아버지는 애정 표현을 않으셨지만 

그 줄줄한 우리를 데리고 맨날맨날 바닥가로 산으로 데리고 다니셨다,

내가 아버지였으면 나는 내 혼자 놀러 다녔을건데

우리 아버지는 어지간히도 우리를 끌고 다니셨다.


다행히 차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지만

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놀러가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거의 하루 걸러 해운대, 광안리, 다대포, 송정, 테종대, 내원사를 다녔던 것은 

그 곳들의 옛날 모습과 함께 유리 아버지와 함께 우리에겐 보배이다. 

그 옛날에 텐트로 야영도 했으니...

엄마는 맨날 도시락 싸랴, 따라가서 땡볕에 짐 지킨다고 억쑤 고생하셨다.ㅋㅋ.

얼음과 과일은 항상 아버지가 사 오셨다, 식구가 많으니 늘 박스로 들여와야해서 그러셨으리.


아버지는 59세의 연세로 일찍도 가쎴다.

딸 여섯 다 서울로 대학 보내며 

참 사랑하며 키우셨는데

정작 효도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우리가 커서 자리 잡고 변변한 선물도 한번 해 드리지 못하고 가시고 말은 것이 

늘 맘에 걸리고

생각만하면 콧등이 찡하다.

다행히 엄마는 84세의 연세에도 건강하게, 굿굿하게, 행복하게 잘 계셔 주어 참 감사한 일이다.


어릴 때 우리는 독방을 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ㅎㅎㅎ.

여섯명 다가 독방이 말이나 될법한가?!

우리 어릴 때의 이상형과 부럼움의 대상은 오빠 주욱 있는 집의 외동딸 혹은 무남독녀.

넘 부러웠다.


세월이 많이도 흘러 우리는 이제 50대 말에서 40대 말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되려 우리가, 

남자 형제만 있는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무남독녀들은 너무도 우리를 부러워한다.

정말 세상 웃기지 아니한가?

우리도 정말 좋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그리고 자매 많은 것을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십분 이해도 하고

그런 친구들이 참 안되기도 해 보인다.

자매도 없이 우애 살꼬?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어제의 불만이 오늘의 감사 제목이 되기도 한다.


친정 엄마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시며

아직도 일본 노래 교실 다니시며

목소리 쩌렁쩌렁하게 노래도 부르시고

60세 되어 배운 수영으로 이제는 물개되어 우리보다 수영을 잘하며 즐기고 계신다.


엄마가 턱 밑에 지방이 쌓여서 찢고 수술하시는데 언니가 모시고 오고가고 하는 것을 보고

동생이 그런다.

"어릴 때는 엄마가 우리를 병원 데리고 다녔는데, 이제는 우리가 엄마 병원 모시고 다니네?" 한다.

그렇네?

어릴 때는 엄마가 우리에게 다해주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하나씩 해 드려야하는 때가 온 것이다.

이리 세상은, 시간은 돌고도는 것인가보다.


미국서의 생활이 조금 자리 잡히고, 

매년 2얼에 한국에 나가 엄마랑 자매들이랑 같이 여행하고 맛집서 먹고 돌아온다.

올해는 일본도 다녀왔는데

뱃사공과 같이 부르던 엄마 노랫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며, 기운 찬 목소리에 우리도 졸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는 마음은 더할 수 없이 감사도 하고, 착찹하기도하다. 

엄마랑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까...


주위에 94의 연세에도 여행 잘 다니시는 부모님드리 계신다.

우리 엄마도 그러기만을 바란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은 말로 할 수도 없지만 

불만이 없은 것도 아니지만

지금은 그저 엄마가 편안하게, 기쁘게 살기만 바랄 뿐이고

엄마가 우리 옆에 안 계시는 것은 60을 바라보는 내게도 상상이 안가는 일이다.

엄마,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어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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