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아픈 것을 계기로 준비해서 22년 겨울 12월에 회사에 아파서 못 나온다고 결정적으로 말하고, 거의 은퇴애 들어 간 것이 1년이 넘었는데, 무엇을하고 지냈는지 전혀 기억도 없고, 계획도 없었다.
하나 한 것이 있다면 손주 보기. 첫 손주, 너무 똘밍 똘망 눈망울에, 항상 무엇을 할꼬 머리 귤리는 것이 보이는 이 꼬마 도령이랑 노는 것이 얼마나 재미나고 신기하고 감사한 일인지 말로 할 수가 없다.
이 이쁜 손주 아래로 손녀가 태어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덕에 손자, 손녀 하나씩을 둔 부자 할매가 되었다.( 친구 자녀들을 보면, 결혼하기도,  어기 낳기도,  손주 돌보아 주기도 다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베비시터는 와서 작은 손주를 보고, 나는 여차 하면 달려가서 큰 손주 돌보미를 한다. 감기 걸렸다, 너무 피곤하다, 부부 저녁 모임이 있다, 출장이 있다 등등의 분부만 있으면 한 걸음에 달려가서, 자고 가라하면 지고 밤에 돌아가라하면 가고 하면서 아기를 봐준다.
손주라고만 해도 이쁠 것인데 얼마나 이쁘게 생긴지는 말로 할 수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주관적? 모든 할매의 이구동성?)
아가의 크고 맑고 장난끼 가득한 눈망울을 보면, 내가 세상에 더 부러울 것이 뭐가 있나, 정말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나의 생각이다. ㅎㅎㅎ.
 
한걸음에 달려가, 아니면 우리 집에 데려와서 돌봐주고 밥해 먹이고, 놀아주다보니  일년이 어찌 지났는 지도 모르겠고. 은퇴를 결심한 용기를 내게 된 100% 이유인 이 손주들을 필요할 때 봐 쥬게 되어 얼마나 더 행복한 일인지...
 
이제는 세살이 되어서 손가락으로 세살도 보여주고, 숫자도 세고, 뜻도 모르는 요일도  읊어대는 조 이쁜 조동이.  그리고 할미를 놀리는 말도 하며,  있는데 없다고도 할 줄 아는 지능이 되었다.
 
아들 하나가 이리 성장하여 이제 마흔이 3년 뒤인 사회인이 되고, 아내가 생기고, 가족이 늘어나서 1명이 4명이 되었으니 할 도리 다한 셈.
 
나의 지난 세월, 수많았던 역경들, 차마 지나지 못하고 그만 두고 싶었던 고개 고개 구비 구비의 보상을 다 받는 듯 하다.
경제적으로는 주위 친구들의 부에는 발톱도 못 내미나,
저에게 은혜가 족하옵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던 사람들과 나의 행복과 불행  (0) 2020.06.17
뉴욕, 코로나 감금 한달 열흘째  (0) 2020.04.22
가을로 접어들며  (0) 2019.09.11
<다시 일어 설 힘이 없다고 생각들 때...>  (0) 2019.03.30
엄마  (0) 2018.08.15

결혼하고 35년,

나는 불행하네 하면서,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떠 오르며 과연 그들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그들은, 그때보다 니은 생활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며, 정말, 과연 나는 어떠하여 이리 down 되어

죽지 못해 사는 마음인가 살펴본다.. 

학장 시절에는 교우 관계가 넓지 못했다. 많은 자매들속에 뽂다거리며 사느라, 우리끼리 놀고 다투고 바빠서 친구라고는 국교 1명, 고교 1명이 전부이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이 집에 오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면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친구들이 주로 집으로 왔다. 대학교때는 같은 지방서 올라온 친구들과 열명이 등하교를 같이 하며 어불려 다녔지만 졸업과 이민과 동시에 연락 없이 지내고 있고, 한국 나가는 일이 있어도 전혀 연락 할 생각을 않고, 형제 집에서 꽁 박혀완전 조폭같이, 같이 나갔다 같이 들어왔다, 여행 다니며 지내다 오니까 나는 사회적인 성형은 아니다. 아니면 사람 대하는 일을 오래하다 보니 나의 성격이 달라진거다. 

결혼하고 사회 셀횔속에 만난 사람들, 

그때는 밥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 오는 것을 좋아해서, 집에 사람이 늘 끓었다, 오죽하면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는 늘 열명이 밥먹는다고 불평하셨었다. 그리고 나도 다른 집에도 가고, 더구나 작은 교회라서 거의 격주로 교회 사람들이 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혼자 다니지를 못해서 늘 사람을 끼고 다녔다. 뭐 사줄께 같이 가자 해서 손님 만나러 갈 때도 누구라도 달고 다녔다.

그러던 내가 바뀌어서 이제는 혼자 다니는 것이 좋고 편하고, 사람들이 싫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한다. 

나의 바램은 시골에 가서 농사 짓고 혼자 수행하며 사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혹시 사람 좋아하는 나의 천성이 다시 나올라나...

 

그때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다. 많이 알고 지냈다.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을 알지만 손님들뿐.

그때 알던 사람들이 어찌 지내고 있을까,

많이들 행복해졌을까...

몇사람 소식을 아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편치를 못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불행한 것은 아닐테고.

나만 불행하나?

그러면 나는 무엇이 그리 불행하서 이리 석달을 내리 노는 날에 즐기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며 사나.

무엇이 문제인가?

일하기 싫다는 것과

남편이 맘에 안든다는 것.

일. 손님을 대하는 일이고 책임감이 많은 일이다보니 넌더리가 나기도 하고,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이 어디인데 이제 완전 프로페셔날로 가는 입문이고 조그만 노력으로 돈 버는데 싶지만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일이 잘되니 팔자가 편해서?... 형부는 작년에 은퇴하셨는데 29년 일하고 은퇴, 나는 벌써 35년 일했으니 은퇴해도 되지 않을까?...

남편. 영원한 숙제. '남편=남의 편'이라고. ㅎㅎㅎ. 이리 오래 살아도 적응이 안되고, 내리 놓아야지하면서도 포기도 안되고,  속을 있는 대로 다 디집어서 내가 화병으로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아 안보고 사는 것을 바란다. 

그래서 내가 불행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리 험악한 상황인가?

아니제!

다시 열심히 하자. 그리고 노력하자. 

2년만 더 채우고 은퇴하고

남편 내리놓기 더 연마하고.

나에게 주어진 많은 장점과 잘 된 일들을 보며 감사하고

매일 매일 잘 된 것, 주어진 것을 보며 살자.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에 매여 불행하다고 주문 외우며 살지 말자.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감사로 노래하고 살아보자.

오늘 하루만, 딱 오늘 하루만 그렇게 살기.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70% 은퇴가 1년이 지나다.  (1) 2024.01.10
뉴욕, 코로나 감금 한달 열흘째  (0) 2020.04.22
가을로 접어들며  (0) 2019.09.11
<다시 일어 설 힘이 없다고 생각들 때...>  (0) 2019.03.30
엄마  (0) 2018.08.15

3월 13일에 사무실서 긴급회의를 통해 사무실 클로즈한다고 해서

2, 3일이면 되겠지하고 랩탑만 달랑 들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2주,3월 말,  4월 말, 5월 중순으로 늘어난 상태이다.

그 사이에 사무실에 가서 자택 근무에 필요한 도구들을 추가로 더 가지고 와야 했다.

사무실에 갈 때도 슬픈 상황이었다.

160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이다.

매일 한 사람이 우편물 첵압, 배달되는 손님들 첵크때문에 근무를 한다.

우리는 전화나 이메일로 당일 근무자에게 내 사무실에서 무엇, 무엇이 필요하다고 미리 말하고, 만날 시간을 정한다.

그리고 우리 사무실 고객 전용 파킹장에 있으면 당일 근무자가 마스크, 손 장갑을 끼고 나의 물건을 들고 나온다.

나는 차의 뒤 트렁크를 열어 놓고 6피트 떨어져 있고, 당일 근무자가 다 실으면 내 차에 다시 타고, 땡큐 & 바이를 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다. 이제는 악수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실어준 물건을 뒤 트렁크에 싣고 나오는 마음이 너무 서글펐고, 당최 이 이상한 상황은 언제 끝나나,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나 한심스럽다.

더구나 미국이란 세계 최 강대국이라는 곳에서, 다른 나라에서 두, 세 달 번지고 있을 동안 무엇을 준비한 것인가?

양로원에서는 노인들이 속절없이 숨을 거두고 있고,

산소마스크, 병원 근무자 마스크도 부족하다 하고,

원인 규명도 못한 채 장례를 치러야 하고,

장례도 너무 많아서 제때 못 치르고 열흘 넘게 기다려야 하며,

직계 가족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병원 근무자들도 많은 감염과 사망이 잇따르고 있고,

각종 식품 생산지, 육 축 생산지, 도처에서 감염자가 잇따라서

생산이 어찌 될지, 유통이 어찌 될지, 다시 경제 활동이 풀려도 문제가 많을 것이고,

백신이 나와서 자유롭다 하더라도 그동안의 피해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얼마나 심각하게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정말 뚜껑을 열어보아야, 지나가 보아야 알...

많은 일반인들은 주식을 한다고 난리가 났고,

경제, 투자 전문가들은 공황을 언급하며 현금을 만들고 있다. 더 낮아질 것이니 그때 쓸 거란 말이지.

 

교회의 의사 선생님 장로님께서 같이 일하는 병원 근무자들이 사망을 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원인도 모르는 채 환자분들이 많이 사망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시다고..

이런 상황 속에서 일하시는 모든 근로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특히 의료진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뭐라 감사의 말씀을 전할 수가 없다.

 

여하간 며칠로 알았던 자택 근무가 벌써 40일째. 그리고 또 25일이 더 있어야 출근을 할 수 있는지 알겠지만,

경제 활동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사무실에 출근을 할지, 손님들을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부터도 안 나갈 것이니까.

아침 8시에 사무실에 나가서 밤 10,11, 혹 그 다음날 1시까지, 토요일도 나가서  일하던 나.

처음에는 휴가로 알고 즐기자, 비싼 모게지와 세금 내며 사는데, 잠만 잠시 자고 나가던 집에서

동네도 걸으며 벚꽃, 배꽃, 목련 등 갖갖 봄 냄새를 황홀하게 느끼며,

하루 세 번 걷고,

따신 밥 해 먹고,

냄새나는 김치 찌개 등 각종 먹거리로 일일 일 요리로 맛나게 먹고,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즐기자 하며

그러잖아도 하기 싫은 일을 뜸하게 하고 있는데

어쩌다가는 확 돌아버리겠다 생각도 들고...

정신 상태에 문제가 많은 사라들도 생기겠다는 염려.

이 참에 은퇴하고 작은 돈으로 애끼 살며 그냥 그렇게 살아보까도 싶고.

미국 와서 일한 지 벌써 35년.

이번에 한국 갔을 때, LG 다니시다가 은퇴하신 형부가 25년 일하셨다는 말에 화가 났다.

오잉?! 나는 여자인데 35년이나 일했는데, 은퇴하려면 할 수도 있는 상태이네?

미국 상황은 좋지 않다.

이 파동이 끝났을 때 다가올 많은 비즈니스의 파산과 이렇게 대책 없이 헬리콥터 돈을 뿌린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돌아올 것인지 정말 두렵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70% 은퇴가 1년이 지나다.  (1) 2024.01.10
알던 사람들과 나의 행복과 불행  (0) 2020.06.17
가을로 접어들며  (0) 2019.09.11
<다시 일어 설 힘이 없다고 생각들 때...>  (0) 2019.03.30
엄마  (0) 2018.08.15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이다.

참 반듯하다.

어렵게 살아왔는데

그늘이 없고

반듯하고

겸손한 인상이고

본인의 신념과 같이 본인이 아는 것을 나누어 도움이 되고자하는 

의지가 막 펄펄 보인다.

 

나는, 종일 손님에 서류에 미팅에 책 잡을 시간도 없다며

그래도 배움의 줄은 놓지 않는다가 나의 인생 소신.

운전 시간이 많으니까 운전중에 유투브로라도, 소리로라도 배우자.

나의 자각을 깨우고 발전시키자는 의메에서 많이 듣는다.

유근용 작가의 2부작의 유튜브를 우연 기회에 들으면서

젊고 겸손하게 보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냥 들었는데

본인 이야기인데 내용이 좋고, 너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 모습도 좋아서. 계속 들었다.

발음도 얼마나 또박하게하며

타인에 도움이되고자하는 열의가 너무 풍겨나와서

듣고 자극받고 찾아보니

대단한 사람이네...또 충격.

금수저, 흙수저 세상에 이렇게 혼자 힘으로 설 수 있구나! 대단한 사람이다.

 

이번에 한국 나가면 좀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이 바쁜 와중에 연락처를 

막 찾던중에 문득  드는 생각.

이 사람이 대단해서 찾나?

니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왜 안되겠노?

길도 다 가르쳐주니까 한번 따라해보자...

유근용샘, 초인 용샘.

좀 기다려 보시오.

내가 잘 배워갖고 따란하며 감사하요 하고 나타날께요.이전오.

우보만리로라도 가지요.

 

 

뉴욕의 날씨는 아침 저녁으로 무엇을 하나 덧 입어야 될 정도로 써늘한 날씨가 되었다.
봄, 여름에 왜 이렇게 비가 많은 날씨가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가을의 날씨는 아름답다.
Garden state 라고 하는 옆 동네의 뉴저지, upstate 뉴욕의 가을은, 단풍이 참으로 황홀하게 아름답다.
그럴때 공 치는 사람들의 최고의 행복 기간이 될 듯.
가을이 오니 올해를 마무리, 보낼 차비에 비빠진다. 잘 마무리하고 2020년을 맞이해야지.
2000년 접어들며 밀레니엄 버그 어쩌고,  종말이 오나 싶게 캄퓨터고 뭣이고 떠들썩하더니 벌써 20년이 지나고 있다. 세월 너무 빠르다, 무섭게 빠르다... 하루 하루 정신 차리고 잘 보내야겠다.
어제는 시각 장에인이 된 개그맨 이동우씨가
딸 지우와 나온 프로그램을 보고, (미우새 9/8/19방영분)
앞도 못 보는 사람이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했다는 것을 보며,
정말 존경스러웠고.

신채가 부자유스런 사람들을 도우며 경기에 나오는 선수들도 있는 것에 참 희망을 느꼈고,

불평, 못할 조건, 나태만 많은,  저 자신이 참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아침에만 해도 열심 감사히 살자하며 나갔는데!
저녁에는 케이오패. 그로기 상태. 힘빠지고...

자고 인나면 또 새 날이...

맨날 맨날 새로 충전하며 어제보다 좀 낫게만 살면 되겠습니다.

Royal Caribbean, Anthem of the sea. 8/24-29 

회사에서 올해 세번째, 마지막 보내주는 포상 여행으로 버뮤다에 갔다 왔다.

20년 전에 아들이 어릴 때 Norwegian Cruise  를 타고 다녀왔는데 그때는 미국을 잘 몰라서 

배만 타면 다 뜨신 데 가는 줄 알고 그냥 골라서 10월 중순에 배를 탔는데. 아뿔싸! 뉴욕서 배 탈 때부터 쌀쌀했는데 섬에 도착했는데도 추워서 바다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아름다운 바다를 발만 담그고, 바라 보기만 했던 안타까움이 컸는데 이번에 다시 들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버뮤다는 영국령에 오래 있어서 차선이 우리와 반대이다.

위도가 Virginia 정도라서 바하마와는 날씨가 다르다. 한국의 부산정도의 날씨라고 할까.

처음에 배 탈 때는 배에서 제공하는 여행을 미리 미리 다 구입해서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나가는 피곤한 해프닝이 있었는데 이제는 몇번 타 보았으므로

점심 먹고 천천히 나가서 택시나 대중 교통을 타고 원하는 데만 조금씩 널널하게 다닌다.

전에 왔을 때 pink sand,  바닥 보이는 배, 스노클링등 다 해 보았으므로 이번에는 아쉬웠던 바다만 보고 즐기기로 작은 계획만  결정.

(버뮤다 첫날)

점심 먹고 일단 배에서 내렸다.

조금 걸어가니 버스와 페리를 같이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표을 파는 곳이 있었다. 삐용삐용 계산 해보니

2일치가 젤 경제적이겠다.  두명 끊으니 $63 나왔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차로 운전하면 한시간정도의 작은 섬이다. (택시 $100)

먼 거리는 페리가 빠르다. (45분)

동네를 보려면 버스가 구석구석 스탑하니까 좋다. (2시간)

일단 페리를 타고 St. George 에 갔다. 그 유명한 Tabacco Bay Beach 에 가려고. 페리서 내려 $3주고 셔틀을 탈 수도 있고, 15분 걸을 수도 있다. 걷기 신봉자라 걸었다. 결론은? 괜히 왔다. 너무 작고, 사람은 많고,  무슨 pub 에서 음악 소리 나와 시끄럽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급히 되돌아 나왔다. 그렇지만 가 보기는 했으니 가기는 잘 했다. 

오던 중 버스를 타고 St. David 섬을 가는 버스를 타고 뺑 둘러 나왔다. 이쁜 색깔 지붕의 집들과 바다와 배들. 영쿡 사람들이 여기 와서 좋은 별장을 지어 놓고, 좋아하는 배를 즐기며 살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밤새도록 밖에서 머물 수 있었지만 회사 사람들과 같은 식탁에서 저녁을 먹어야하므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시간 맞추어 들어 왔다.

(버뮤다 둘째날)

둘째날이자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들르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배우자의 거부로 못 가고,

바다와 시내 해밀턴을 가 보기로.

버스를 타면, 긴 섬을 따라 오른 쪽 라인으리 버스를 탈 수도,

아니면 왼쪽 라인의 버스를 탈 수도 있다.

오른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동네 구경하면서 가서 Horseshoe beach 에 갔다 (40분).

거기를 따라 이동하면 계속 아름다운 바닷가이고 사람 하나도 없는 바닷가도 나온다.

겨울 감기 예방 목적으로 바다에도 좀 드갔다가 모래 사장에 좀 눕기도 했다가 시간 보내고.

참고로 버뮤다의 바다는 제법 파도가 있다. 좀 성인은 파도 타기가 재미있지만 아이들은 조심 할 일.

(2월에 갔던 Aruba 는 정말 friendly beach 였다 어쩜 파도도 하나 없어 수영하고, 어린 아이들 놀기는 베스트.  물 기온도도 들어가기 딱 좋고 참말 좋았다. 그런데 바람이 억쑤 쎄었다.)

수영복 그대로 대충 닦고, 수영복 위에 감는 원피스를 입고 해밀턴 가는 버스에 올랐다 (20분).

시내는 다 똑같다. 미국서 보던 회사 로고도 보이고 복잡하다, 그래도 공기는 깨끗하다.

art center 도 가 보고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다가 다시 배로 돌아왔다.

(결론)

버뮤다는 안전하고 대중 교통이 잘 되어 있어 버스와 페리만 타도 충분히 잘 다닐 수 있고, 로컬도 잘 볼 수 있어 강추.

한시간이면 다 가는 그 조그만 섬에 골프장은 유독 많았고, PGA 등 큰 대회도 열린 곳도 있고, 골프로 유명한 모양.

다음에는 집을 하나 얻어서 가면 다 데리고 다닐 수도 있는데, 세상은 넓고 안가 본데 많아 세번째 또 들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또 회사 여행 목적지로 걸리면 또 오게될런지.

 

 

 

 

 

 

회사 교육으로 워싱턴 근교에 갔다.
방에서 귀가 짐을 급히 챙기느라 서둘다가, 한국서 사 온 머리핀을 잊어버렸다. 분명 여기 두었는데 없는 것이다.
속이 상했다.
얼마짜리도 아닌데,
시스터들이랑 같이 가서 떠들며, 고르고, 꽂아보고,
서로 이게 낫다, 저게 낫다, 이거 사라, 저거 사라 해가며 샀던 기억들이 도둑 맞은편냥,
크게 속 상하했다.

Check out 어여 하고, 짐 맡기고 다시 교육에 들어가야하므로 계속 허겁지겁 왔다 갔다하며
짐을 싸다가
지갑에 넣어다니게 따로 나온 향수 작은 병을 손에 들고 있다가 목욕탕 바닥에 떨어뜨려 완전 깨지고 말았다.
비싼 거라 아까웠지만
머리핀 생각에 이 향수병이 깨진 것은 별로 아깝지 않고
에고, 비싼간데만 싶고,
머리핀때매 계속 속이 상했다.

교육중에 그 머리핀을 내 가방에서 발견했다.
헤어진 찬구 만난냥 너무 반갑드만
금새 달려드는 생각!
음미-, 향수병 아까운 거!

참말 이상한 심리이다. ㅎㅎㅎ.
하나도 안 아깝다가 머리핀을 찾으니까 득달같이 달려드는 본전(?) 생각. 사람 참 우습넹.
계획은 분산이다.
자꾸 잊어버려요.

너무 해야 할 것이 많은.
너무 한까번에 다 해버리야한다는 강박.

한번에 하나씩.
죽을 맛에서 다시 배우고 일어나요.
이번 주 완전 죽 쓰고,
허비하고?
힘 새로 얻고?
매일 아침 운동 가고,
늦게 나가고,
일찍 자고,
세월 좋았슴다.
 
또 다시 내일부터!
<다시 일어 설 힘이 없다고 생각들 때...>

길도 않은 인생 살았구만,
하루에도 넘어야 할 숱한 태클, 태클들 넘기고.
또 한숨 돌리고 있으면 집채만한 태클이,
또 한숨 돌리고 앉으면 이제는 다 집어삼킬만한  태산만한 파도가 덮친다.

그럴 때마다 쓰러지고, 포기하고, 나가 자빠지고,
그러다가 어째 어째 또 일어나
힘내서 용케도  건너고 건넜건만.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아니들 때,
이제는 그냥 주저 앉아 다 내 던져버리고 싶을 때,
다시 일어서자고 나 자신 부추기는 것도 거추장스러울 때,
꼴보기도 싫을 때.
이제 나는 어이하나.

그냥 모든 저항을, 안간힘도 내려두고 바라만 봐야겠다...
생각도 비우고, 움켜쥔 손아귀도 펴고.

죽는 것은 다 받아놓고 세상에 태어난 인생들.
다만 언제 갈 지 모른다는 한 끝 차이인데 이리도 힘들게 살고 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욕, 코로나 감금 한달 열흘째  (0) 2020.04.22
가을로 접어들며  (0) 2019.09.11
엄마  (0) 2018.08.15
"주말"이라는 이름이 주는 여유로움  (0) 2018.05.19
나의 뇌의 움직임  (0) 2018.05.13

+ Recent posts